본초학

본초학

 

 七  情

 

칠정(七情)의 개념

동양의학은 기를 조절하는 의학이며 마음을 다스리는 의학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동양의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마음의 움직임에 대하여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음의 움직임은 감정으로 나타나며 동양의학에서는 감정을 일곱 가지 즉, 희(喜)·노(怒)·우(憂)·사(思)·비(悲)·공(恐)·경(驚)으로 나누어 칠정(七情)이라 하고 이 칠정이 각기 신체적인 변화를 일으킨다고 하였다.

내경 에서는 칠정을 오장기능 활동의 하나로 보고 칠정의 과도한 발휘는 오장의 기능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즉, "희(喜)는 심(心)을 상하게 하고, 노(怒)는 간(肝)을 상하게 하며, 사(思)는 비를 상하게 하고, 우(憂)는 폐(肺)를 상하게 하며, 공(恐)은 신(腎)을 상하게 한다." 결국 기쁨이 지나치면 심(心)을 상하기 쉽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역으로 진단면에서도 응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환자의 일상생활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물어서 밝히고 그 사람의 생활이 어떠한 정신상황에 있는가를 알아내어 내장의 어디가 손상했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칠정의 변화는 정신활동의 구체적인 표현이고 상이한 사물이나 상이한 환경의 영향에 의하여 사람의 정지를 시시각각 활동변화시키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하에서는 그 변화에 절도가 있기 때문에 건강에는 무해하지만 만약 칠정이 지나치면 정신상 과도의 자극을 받아 그것이 정상의 생리변화에 영향을 주어 질병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정지가 갑자기 과도하게 되거나 정신적인 자극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때 정상적인 정신활동을 잃게 되어 인체의 기능은 문란해지고 장부음양기혈이 실조되어 질병이 발생하며, 심할 경우 장부의 기질성 병변을 일으키게 된다.


칠정과 내장기혈의 관계

1. 희(喜)

즐거우면 기의 순행이 화평해지니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피의 순환도 잘되어 신체 내에 울체되는 것이 없어지므로 이런 상태를 기(氣)가 느슨해진 것이라고 하였다. 즉, 모든 마음의 불만이나 생리기능의 불균형상태가 해소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희락(喜樂)도 지나치면 신기(神氣)가 소모 분산되어 올바른 신(神)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며 오장 중 신(神)을 간직한 심(心)의 기능마저 상하게 한다.

 

희(喜)는 심장정지활동의 반응으로 유쾌한 감정의 표현이다. 생리적으로 희(喜)하면 의화기완(意和氣緩)하게 되는데, 이는 영(榮)과 위(衛)가 순조로워 건강무병하다는 표현이다. 그러나 기쁨이 과하면 심기(心氣)가 손모하여 심신이 불안하게 된다. 또 희락이 과하면 폐에 영향을 미친다. 임상상 희(喜)에 심을 상해 병이 된 것은 정탕이불수(情蕩而不收), 희소무도(喜笑無度), 주의력불집중(注意力不集中), 심계실신(心悸失神)이 나타나는데 심하면 광란실상(狂亂失常) 등의 병증이 나타난다.

 


2. 노(怒)  

성을 내면 기(氣)가 모두 위로 오른다고 하였다. 즉, 성을 낸다는 것은 혈기가 모두 역상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므로 심하면 피를 토하든가 기절을 하기도 한다. 성을 자주 내던가 심한 감정의 흥분은 오장 중 피를 저장하고 있는 간(肝)을 상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간(肝)이나 담(膽)의 기능이 이상흥분되면 행동이 동적이며 용감해지고, 감정적으로는 성을 잘 내고 흥분되기 쉬우며 간담(肝膽)이 약해지면 겁이 많아져서 불안해하고 결단력이 없어 우유부단해진다.

 

노(怒)는 간장정지활동의 반응으로 분개하여 평형을 잃어 기가 역상하고 노화가 발발하는 상태를 이름이다. 『소문·조경론』에는 "혈유여칙노(血有餘則怒)"라 하였으니, 이것은 혈기왕성한 사람은 한층 노하기 쉽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대노는 혈액을 상해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고, 『소문·음양응상대론』에는 "폭노상음(暴怒傷陰)"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곧 대노는 혈액을 상해하여 음혈이 소모하면 수(水)가 목(木)을 윤케 아니하고 간화가 더욱 성하여지기만 해도 금방 발하기 쉽게 되는 것이다. 노는 원래 간에 속하는데, 간과 표리관계에 있는 담에도 영향을 미친다. 노하는 것은 양이 음을 이기는 것이므로, 심에 영향을 미치며, 노가 음에서 발하여 신을 침범하기도 한다. 고로 간·담·심·신의 사장(四臟)은 노(怒)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3. 우(憂)  

근심이나 걱정이 있으면 기(氣)의 순행이 막혀 폐색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기(氣)가 폐색되면 오장 중 폐(肺)와 비(脾)를 상한다고 하였으니 근심, 걱정 등의 감정적 갈등은 호흡기능과 소화기능을 해친다는 뜻이다.

 

우수(憂愁)는 감정이 심울한 상태를 말하는데 기를 주하는 폐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령추·본신편』에 "수우자, 기폐색이불행(愁憂者, 氣閉塞而不行)"이라 언급하였으니 폐는 기를 다스리므로 기가 폐색되면 폐기가 조지(阻止)되므로 해서 상하게 되어 기허로 인한 여러 증후가 발생한다. 한편 『영추·본신편』에 "비수우이불해칙상의(脾愁憂而不解則傷意)"라고 말하고 있듯이 우는 비를 상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우(憂)는 폐의 지(志)에 기인하지만 모자의 장부인 비(脾)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4. 사(思)  

한가지 일을 골똘히 생각하게 되면 기(氣)가 순행하지 못하고 한 곳에 맺힌다고 하였다. 그리고 오장 중 소화기능을 주관하는 비장(脾臟)을 상한다.

 

사(思)란 정신집중, 문제고려의 표현으로 비장정지(脾臟情志)의 반영이다.『령추·본신편』에 "인지이존변, 위지사(因志而存變, 謂之思)"라 하였는데 이는 사(思)란 의지에 의해 반복고려하는 것을 가리켜 한 말이다. 만약 사려(思慮)는 완전히 정신에 의존해서 지지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만약 사려가 과도하면 정신력을 소모하게 되고 의지도 점점 착란해지게 된다. 한편 사(思)는 비(脾)의 주지(主志)이므로 과도한 사려도 비를 상한다.

 
5. 비(悲)  

슬픈 감정이 있으면 기(氣)가 가슴 속에 막혀 흩어지지 못하므로 열기(熱氣)로 변하여 소실되면서 폐(肺)와 심(心)의 두 장기를 모두 상하게 한다고 하였다. 또 호흡기나 순환기계의 병이 생기면 감정도 감상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비(悲)는 애상(哀傷), 번뇌(煩惱), 고통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비는 노·우·사의 과도한 상태를 말하며 폐의 정지반영이다. 병을 일으키는 방면에서는 비상(悲傷)에 의해 내장이 손상되는 것과 내장에서 변화가 일어나 뒤에 비애(悲哀)의 증상이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추·본신편』에는 "간비애동중칙상혼(肝悲哀動中則傷魂)"라고 하였고, 『소문·위론』에는 "비애태심, 칙포락절, 포락절칙양기내동, 발칙심하붕수수혈야(悲哀太甚, 則胞絡絶, 胞絡絶則陽氣內動, 發則心下崩數수血也)"라고 하였다. 『소문·거통론』에는 "비칙심계급, 폐포엽거, 이상초불통, 영위불산, 열기재중, 고기소의(悲則心系急, 肺布葉擧, 而上焦不通, 榮衛不散, 熱氣在中, 故氣消矣)"라 한 것은 전자에 대한 설명이고, 후자에 대해서는『영추·본신편』에 "심기허칙비(心氣虛則悲)"라 하였고,『소문·선명오기론』에는 "정기병어심칙희, 병어폐칙비(精氣幷於心則喜, 幷於肺則悲)"라 하였다. 그러므로 결국 과도한 비애는 오장의 기능을 손상하며, 삼초의 기능에도 상해를 준다. 때문에 비애가 심하면 실신·통곡·토혈·천급의 증상이 나타나며, 생명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다.

6. 공(恐)  

두려운 마음이 있으면 기(氣)가 아래로 처져 갇히게 되고 위로 오르지 못한다고 하였다. 또 두려운 감정은 오장 중 생식기와 내분비기능을 주관하는 신(腎)을 상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두려운 감정은 정력을 약하게 하며 또 혈이 부족해도 두려움이 그치지 않는다.


공(恐)은 사람의 본신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외겁정서(
畏怯情緖)로 외부사물의 자극에 의하여 정신이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곧 공포의 감정이다. 또한 공은 신장정기(腎臟精氣)의 반영이다. 공포가 생기는 원인은 대부분 외계의 자극에 의하지만, 신기결허(腎氣缺虛), 혈기불족(血氣不足), 의지불족하고 정신불안정한 사람이 걸리기 쉽다. 신은 의(意)를 장(藏)하고, 심(心)은 신(神)을 장(藏)하는데, 공(恐)의 감정이 과한 경우에는 정신력이 손상되어 공포, 불안을 초래한다. 공포불안이 내장을 상하게 하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소문·음양응상대론』에는 "공상신(恐傷腎)"이라 했고,『소문·옥기진장론』에는 "공즉비기승의(恐則脾氣乘矣)"라 하였다. 이런 것들은 모두 외계의 자극이 너무 심해서 공포가 생겨 그 때문에 내장이 손상되는 병변이다.

 


7. 경(驚)  

크게 놀라면 기(氣)는 흩어져서 순행의 질서가 무너지며 심도 의지할 바를 잃고 산란해져 올바른 판단이나 생각을 못하게 되므로 온 몸의 힘이 쑥 빠지며 심신이 모두 혼란해 지는 것이다. 경의 감정은 오장 중 신(腎)이 주관하므로 과도하게 놀라거나 하면 역시 신장(腎臟)에 병변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칠정은 오장의 기능을 좌우하며 오장은 또한 칠정을 우러나게 하고 있으니 그 상호관계는 긴밀하여 마음과 몸은 하나로서 그 경계가 없는 것이 동양의학의 사상인 것이다.

 

경(驚)은 갑자기 외부 사물의 자극를 받아 발생하는 정지로 위험에 부딪히고 이물을 목격하거나 큰소리를 들었을 때 주로 일어나며, 공(恐)은 스스로 자각할 수 있지만 경(驚)은 스스로 자각할 수 없다. 경(驚)을 받으면 내에 심신이 동하여 신기가 어지러워 감정이 불안하게 된다. 그러므로 『소문·거통론』에서는 "경칙심무소의, 신무소귀, 려무소정, 고기란의(驚則心無所倚, 神無所歸, 慮無所定, 故氣亂矣)"라 하였다. 경은 심신을 어지럽힐 수 있으니 경에 조우하여 동하게 됨은 심기가 우선 허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기가 허하지 않으면 경(驚)하지 않으며, 따라서 신기가 혼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칠정의 병리

동양의학은 정신을 오지(五志)로 나누어 인체의 기본 장기인 오장과 결부시켜 정신은 육체에 깃들어 있고, 영민한 정신작용도 오장의 원활한 활동과 상호협조로써 이루어진다. 또한 정신작용의 구체적인 표현으로서의 감정의 치우침이나 과도함은 오장의 기능에도 영향을 주어 원만한 생리기능을 손상시킨다고 하여 심신일여(心身一如)의 생명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정신적인 과로, 즉 칠정상(七情傷)은 신체에 병적인 요인을 만들어준다. 또한 육체적인 과로나 음식부절, 과음, 과색 등도 이러한 병적요인을 이루며 정신작용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